지난 주말 흙탕물이 빠르게 밀려 들어오던 지하차도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부부가 저희에게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을 건네주셨습니다. 부부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공개한다고 말했습니다.
저희도 참사 원인을 명확히 밝히기 위한 공익적 목적에서 이 내용 전해드리겠습니다. 먼저 김지욱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15일 아침 8시 35분, 승용차 1대가 궁평 제2지하차도 옥산 방면으로 진입합니다. 차도 바로 옆 난간 사이로 물이 세차게 들어오고 이상함을 감지한 차량들이 비상등을 켠 채 서행하기 시작합니다. 블랙박스 차량 역시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옆 차가 진입하는 것을 보고 따라 들어갑니다.
물살을 헤치며 지하차도를 절반쯤 지났을 무렵부터 앞 차량들이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자 이상함을 느낀 차량, 앞차가 후진하자 함께 후진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바퀴 높이까지 물이 차올라 가속 페달을 밟아도 점점 속도가 나지 않습니다. 이 순간 반대 방향에서는 멈춰 서 있는 747번 버스와 대형 트럭이 보입니다. 지하차도를 겨우 빠져나갔을 무렵, 방향을 잃고 휘청이기 시작하더니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습니다.
무섭게 강물이 들이치고 결국 차가 물 위에 뜬 채 반 바퀴 회전합니다.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들이치는 물은 순식간에 보닛 위까지 차오르고 불어난 물에 블랙박스 차량은 이도 저도 못 한 채 3분 가까이 떠 있습니다. 물살이 차량 앞 유리까지 때리기 시작했을 무렵, 지하차도 방향에서 가방을 멘 한 남성이 중앙분리대 위를 걸으며 차량 쪽으로 다가옵니다. 잠시 뒤 이 남성 뒤로 두 남녀가 따라서 아슬아슬하게 중앙분리대를 타고 걷습니다. 바로 블랙박스 차량 탑승자들입니다.
함께 후진하던 차량들은 물론 더 이상 나오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은 채 8시 43분 차량은 완전히 물에 잠깁니다. 차량이 처음 지하차도에 들어선 순간부터 완전히 잠기기까지 걸린 시간은 8분. 이때까지 아무런 구조나 통제도 없이 지하차도에는 물이 가득 찼습니다.
18일 기준 24명의 안타까운 사상자(사망 14명·부상 10명)가 난 청주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15일 아침 처음 사고 소식이 전해진 후 나흘이 지났다. 6만t의 물길이 된 450여m의 궁평2지하차도는 차량 17대가 갇히면서 생사를 오가는 구조작업이 시작됐다.
당장 궁평2지하차도에 들어간 물을 빼기 위해 대용량방사시스템이 가동돼 물을 뿜어냈고, 수색과 구조에 수많은 소방과 군인들이 투입됐다. 습한 날씨 현장을 누비던 의료진도 분주했다. 물이 조금씩 빠지고 실종자들이 하나둘씩 발견됐으나 이미 늦은 때였다. 오열하는 유족들을 뒤로하고 무심한 비는 그칠 줄 몰랐다. 사고 발생 후 3일간 궁평2지하차도 현장에서 목격한 모습이 주마등이다.
18일 오전 11시쯤 처참했던 사고 현장은 고요했다. 구조를 위해 궁평2지하차도 앞을 가득 메웠던 소방관, 경찰, 군인, 의료진 등이 하나둘 자리를 뜬 뒤였다. 경찰들만 굵은 빗줄기를 맞으며 현장을 지켰고, 어수선한 분위기와 급박함은 없었다. 마무리된 현장이 궁금해 와봤다는 인근 마을 주민 A(50대) 씨는 "처음 왔을 때보다 분위기가 너무 고요해졌다"라며 "시신이 다 수습된 걸로 알고 있는데 며칠 동안 저 안에 갇혀서 얼마나 고통이었겠냐.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라고 말하며 지하차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인근 마을로 이동해 보니 성인 키를 훌쩍 넘는 풀숲들은 흙탕물 색으로 오염돼 있었고 잔재물들이 매달려 폭우가 휩쓸었던 그날을 증명했다. 강내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B(60대) 씨는 "사고 당일 마을에서도 폭우 피해가 컸다"며 "키가 167㎝인데 목까지 물이 차올랐다. 바로 옆이 미호천교 아래라 지하차도를 잠기게 한 미호강이 흐르는데 비가 매섭게 와서 거칠게 흐르는 강이 너무 무섭게 느껴진다"라고 우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같은 날 오후 1시 청주의 한 견인차 사무소. 이곳에는 당시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의 참혹함을 온전히 간직한 차들이 모여 있었다. 주인을 잃은 채 견인차에 끌려온 차들은 경찰 통제선에 둘러싸여 사고 당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중 시선이 꽂힌 것은 빨간색 '747번 버스'였다. 경찰 통제선에 최대한 가까이 붙어 관찰한 버스의 모습은 처참했다. 버스의 전면과 탑승·하차구 사이 창문은 전부 깨져있었고, 휩쓸려 온 나뭇가지들은 차량 와이퍼에 뒤엉켜 있었다.
이곳에 견인된 다른 침수 차량들도 흙으로 뒤덮이고 창문이 깨져 온전한 모습의 차량은 한 대도 없었다. 차에 남은 흔적들은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들의 마지막 메시지였다. 떠나간 이들의 일상뿐만 아니라 남겨진 유족들의 앞날까지 함께 휩쓸어 간 이번 사고는 명백한 인재(人災)라는 것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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